“하지만 정말 완전히 돌아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카나타가 말했다. 자신은 여전히 한 번 죽었던 사람이며, 돌아옴과 동시에 아주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그렇게 말한 히로아키 카나타는 확실히 변해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분명히 드러나는 변화였음을 그의 파트너인 아마카이 슈하도 인정했다. 과연 자신은 누구일까. 전대 낭왕, 로보, 배틀 머신의 기억을 가진 또 다른 존재일까, 아니면 정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살아가게 된 히로아키 카나타일까.
“로보.”
생각에 잠겨있던 그를 끄집어 낸 것은 슈하였다.
“말했잖아요. 로보는 무슨 모습을 하고 있어도 로보예요. 전대 낭왕이어도, 배틀 머신이어도…. 히로아키 카나타도 마찬가지예요. 사소한 것이 달라져도,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조금 다르다고 해도, 로보가 제 파트너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요.”
슈하는 떨리는 손으로 카나타의 손을 붙잡았다. 아주 큰 용기가 없었다면 절대로 먼저 하지 않을 행위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그의 손이 지금도 여실히 긴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슈하는 가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말해주세요. 로보, 언제까지나 저의 파트너이자 히어로라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도저히 죽은 것의 온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따뜻함이 지금 히로아키 카나타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는 살아있었다. 카나타에게도 그 온기가 느껴졌다.
살아있어서 따뜻했다.
“네 말이 맞아, 슈하.”
슈하의 말이 옳았다. 히로아키 카나타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 히로아키 카나타 그 자신이다. 비록 많은 것이 달라지고, 어쩌면 과거와 다른 것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아마카이 슈하의 파트너였고, 전대 낭왕이자, 로보였다.
기억은….
그리고 감정은 감히 살아있는 것을 배신하지 못한다.
“너의 파트너야.”
깜빡, 어두운 사거리의 가로등이 점멸한다.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빛나는 광등 아래 빛파리 무리가 모여들어 웽웽거리고, 두 사람이 정말 좋아했던 공원의 그네가 바람에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마주하는 두 사람의 눈동자는 과거에도 지금에도 변한 것이 없음을 증명하며, 카나타가 먼저 슈하에게 팔을 뻗었다.
품에 천천히 젖어드는 온기가 계속해서 카나타에게 말을 걸어온다. ‘살아있어.’ 그래, 살아있었다. 그는 이제서야 자신이 온전히 아마카이 슈하의 곁으로 돌아왔음을 깨닫는다.
“미안해.”
카나타가 말했다.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했노라고.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한 것 같다고. “그래도 돌아왔어. 늦었지만 약속을 지켰어.” 늑대는 언제나 의리를 지키니까. 나즈막히 덧붙인 카나타가 미소 지었다. 두 팔로 끌어안은 슈하의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길었어요. 일주일이나 더 기다리게 한 건, 로보가 너무했어요.” 울음기 섞인 슈하의 목소리에 어깨를 끌어안은 카나타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응. 미안해.”
히로아키 카나타가 드디어 돌아왔다. 낭왕도, 배틀 머신도 아닌 로보로. 아마카이 슈하의 파트너로. “이제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거예요.” 슈하가 소매 끝으로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 똑바로 고개를 들어 카나타를 빤히 바라본다. 카나타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똑같이 슈하를 바라보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는 것과 동시에 카나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약속할게. 이젠 떠나지 않을 거야.”
둘은 한참 동안 가로등 아래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재회의 기쁨, 밤의 선선한 공기, 자주 만나던 사거의 공원 풍경을 새기면서. 그러던 중 불쑥 슈하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로보…. 역시, 집 문제 말인데요.”
슈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쥔 채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제 집에 들어와서 같이 지내시는 건 어때요? 로보가 원래 쓰던 손님방도 그대로 있어요.” 슈하는 더 이상 카나타가 이전에 살았던 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카나타가 돌아오기 전까지 쭈욱, 자신이 성실하게 관리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카나타가 그 집에 다시 돌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환경이 너무 열악하기도 하고. 그리고 곁에 같이 있고 싶은걸.’ 슈하의 꼬리가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고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럼…” 카나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까.” 쫑긋, 카나타의 귀가 움직였다. “곁에 있기로 약속했으니까 말이지. 파트너를 오랫동안 혼자 두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으니까.” 살랑살랑 흔들리는 슈하의 꼬리짓에 화답하듯, 카나타의 꼬리도 함께 살랑 흔들렸다.
“그런데 슈하. 정말 괜찮겠어? 초대를 받아서 잠깐 머무는 것과 함께 지내는 건, 느낌이 아주 많이 다를 텐데. 나는 혹시라도 네가 불편할까 봐 걱정이야.”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로보와 같이 지낼 수 있다면, 불편함 정도야 제가 견뎌야죠! 그리고 제가 먼저 제안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해요!”
나왔다. 슈하의 안 좋은 버릇.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슈하의 여전한 그 면이 카나타는 반가웠다. 물론, 저런 점이 가장 슈하다워서 좋아했던 거지만. 조금은 얌전해졌을까? 싶었지만 슈하는 그냥 슈하였다. 히어로를 좋아하고, 자신에게 친절한. 로보를 좋아해 주는 아마카이 슈하.
“그래도 원래 살던 집도 내겐 꽤 중요하니까. 종종 그곳에서 지내고 싶기도 해.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카나타가 부드럽게 말했다. 뒷골목 슬럼가에 위치한, 위험한 곳이었지만 그곳은 카나타의 집이었다. 안 좋은 기억도, 좋은 기억도 꽤 많이 쌓여있는 집.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잊어버렸겠지.
처음 슈하가 관리하고 있었다는 말에는 놀랐지만, 집이 남아있어서, 누군가에게 관리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물론이죠. 로보의 소중한 것들을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슈하도 카나타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두 사람이 한참 파트너로서 함께 다니던 시절, 슈하는 곧잘 자택에 로보를 초대했지만, 그는 자신의 자택에 슈하를 초대하는 일이 도통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에 슈하는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훗날 나이팅게일의 도움으로 카나타의 자택을 양도받을 때에 왜 그가 자신을 그곳으로 초대하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가 자택에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로보가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집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리라. 슈하는 카나타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런데, 저기… 슈하.”
“네?”
어딘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카나타가 드물게 초조한 모습을 보이며 물었다.
“일기장 말이야… 정말로 읽었어?”
잠깐의 아주아주 짧은 정적이 흐르고, 슈하가 고개를 돌렸다.
“일,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는데요…”
고개를 돌린 슈하가 힐끔, 카나타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이런 모습의 로보가 슈하는 새로웠다. 그는 언제나 믿음직한 선배이자 파트너였고, 늘 자신의 옆자리와 등 뒤를 지켜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서투른 모습의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르고 있던 그의 새로운 표정을 발견하는 이 순간이 마음속에서 무언가 강렬하게 팽창하고, 터지듯 넘쳐흐르는 것처럼.
“로보는 언제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예요. 매일매일 말해드릴게요. 어떤 모습의 로보라도 좋아해요. 좋아하지 않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부끄럽게 여기실 필요 없어요.”
“나도 그래 슈하. 너의 솔직한 면을 좋아해.”
두 손을 뻗어 슈하의 뺨을 감싸 쥔 카나타가 대답했다. 그리고 툭, 하곤 이마와 콧잔등을 가볍게 부딪히며 호쾌하게 웃어 보인다.
‘늑대와 같이.’
‘무슨 뜻이에요?’
조금 더 앳되어 보이는 표정의 어린 슈하가 로보에게 물었다. ‘늑대와 같이!’ 로보가 늘 말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슈하는 궁금했다. 로보의 대답은 지금과 같았다. 두 손으로 뺨을 조심스럽게,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감싸 쥐곤 이마를 가볍게 툭 가져다 맞부딪힌다. 아프지 않았다. 다음으로 콧잔등을 가져다 맞대며 지그시 누른 채 눈을 감는다.
‘이건 말이야. 늑대가 자신의 반려나 가장 믿고 의지하는 동료에게 하는 인사법이야. 서로 머리와 코를 맞대고 교감하는 거지. 이마와 이마를 맞대는 것으로 정신적인 교감을. 그리고 콧잔등을 맞추는 것으로 서로의 숨을 나눈다는 뜻이야.’
‘로보라는 이름 말이에요. 분명히 알파 늑대 이름이었죠?’
‘맞아. 잘 알고 있네! 최대 규모의 늑대 무리를 이끌던 알파 늑대이자 우두머리였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려이자 파트너도 있었고.’
‘그래서 늑대와 같이?’
슈하의 기억 속 로보는 대답하지 않고 어서 가자는 듯 재촉하며 손을 내밀며 말했다.
“블랑카.”
“치사해요. 로보는 항상 중요할 때에만 대답해주지 않으니까…”
“아니야. 이번에는 분명히 대답했어.”
슈하는 그래도 어딘가 불안했다.
카나타, 아니 로보는 언제나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더 넓은 세상으로 달려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굴었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슈하는 확인받고 싶었다. 이것은 강박일까, 집착일까. 로보가 자신에게 거짓을 약속할리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전적으로 그를 믿고 싶은데 왜 계속 의심의 싹을 틔우는 것인지.
슈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한번만, 한 번만 더요. 다시 약속해주세요. 로보, 이제 떠나지 않겠다고 해주세요. 로보는 제 하나 뿐인 파트너예요.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당신을 좋아해요. 히어로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좋아함의 의미는 일반적인 좋아함과는 달라요. 분명히 약속하셨죠.”
‘이게 다 그 빌런들 때문이야.’ 슈하는 빌런들의 농간질로 소중한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그것도 두 번이나 잃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그래, 정말로 끔찍했다. 배틀 머신을 파괴했을 때에도, 로보가 품 안에서 다시 눈을 감았을 때에도!
어째서인지 로보는 슈하가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슈하는 그래서 로보를 좋아했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그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금방 흩어질 물안개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깊고, 깊은 그의 눈동자가 참으로 맑고, 올곧다고 생각했다. 호쾌하게 미소 짓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물 그림자 마냥 반짝거렸다. ‘이 사람이 좋다.’ 비록 그가 개인보다 집단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정의를 위해서 자신의 한 몸을 불사 지를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더라도…
“제대로 말해주시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다시 떠나갈 것 같아요. 전 로보의 그런 점도 좋아해요. 하지만 이제 떠나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해주세요. 파트너로서, 로보의 반려자로서 하는 부탁이에요.”
“블랑카, 난.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확실한 답을 해줄 수 없어.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약속할게. 나는 너의 파트너고, 블랑카의 반려인 로보라는 거. 너를 다른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긴 다는 거. 그리고 로보는 블랑카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깜빡, 깜빡…
점멸하던 가로등의 불빛이 완전히 꺼진다.
커다랗게 떠오른 달, 내리쬐는 하얀빛줄기 아래에서 두 쌍의 눈동자가 늑대와도 같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묻어 두고, 애써 터뜨리지 않으려 꾹 눌러 담은 감정이 천천히 폭발하기 시작한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 안에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마리의 늑대가 앉아 있었다.
“슈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잖아. 하지만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으니까 제대로 대답할게. 너는 내 하나뿐인 파트너야. 그리고 파트너이기 이전에 내 하나 뿐인 반려야.”
달이 완전히 기울었다.
“그럼 돌아갈까요…? 우리, 집으로.”
이번에도 슈하가 먼저 카나타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전처럼 크게 떨리거나, 긴장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와 손을 잡아도, 곁에 함께 있어도 빠져나가지 않을 것 같단 확신이 생겨서.
“그래, 돌아가자. 우리의… 집으로.”
로보는 이제 블랑카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언제나 서로의 파트너일 것이고.
그래, 마치 늑대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