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xmetxu님 커미션
로보 드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은 늘 위태롭게 느껴지곤 했다.

카나타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사람에 가까웠다.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아. 그렇게 그가 말하는 것을 몇 번이고 듣긴 했으나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한 번 죽었으므로 또 죽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슈하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번에도 이 사람이 죽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불안으로 생겨난 의문은 슈하에게 함께하는 미래가 아닌 홀로 남겨진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음보다도 슈하는 카나타가 숨 쉬고 있는 것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음보다도 슈하는 카나타가 숨 쉬고 있는 것을 듣고 있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슈하는 그가 여전히 이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있는 것’과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으므로. 있는 것이 언젠간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졸음이 슈하를 덮치고 있었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눈 아래에 그늘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카나타는 그 그늘을 보고 슈하를 걱정했으나, 결국 그것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고집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본인도, 어쩌면 그러할 수도 있었으므로. 상실이란 그런 것이기에……. 상처가 나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 탓이었다. 그러니 자는 도중에 시선이 느껴지더라도, 자신의 생을 확인하는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더라도 카나타는 그것에 있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과 다름없었다.

카나타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슈하 또한 카나타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이해했다. 죽음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다면 그 일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지.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카나타는 슈하의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고 사라졌다. 슈하는 그것을 채우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견딜 뿐이었다. 구멍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구멍이 허전한 것을 느끼기도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어느 날 구멍이 엄청난 통증을 주더라도 그것을 견디는……. 그저 버틸 뿐이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슈하는 카나타의 죽음이 자신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진짜든, 거짓이든. 카나타의 죽음에 자신이 관여한 것이 없지는 않을 것이었다. 슈하는 그런 식으로 카나타의 죽음을 견디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카나타는 슈하의 눈앞에 살아있었다. 체온은 따뜻했고, 심장은 뛰고 있었으며, 혈액이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생명이었다. 죽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그러나 카나타가 살아 돌아왔다 하더라도 슈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구멍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구멍은 여전히 뚫려있었다. 다만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유독 고통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졌다. 카나타가 아무렇지 않게 웃을 때도 그러했고, 길을 걷다가도 그러했고, 요리를 하다가도 그러했으며…… 종막엔 잠을 잘 때도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카나타가 죽었는데 자신이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처럼. 사실 죽은 사람을 내가 너무나 그리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구멍은 더 이상 아파지지 않았으나 그런 것을 하기보다도 슈하는 카나타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더욱 많았다. 그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 중 하나였다. 슈하는 지금도 카나타의 꿈을 꿧다. 카나타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어딘가를 가는 것, 데이트와 비슷한 것들이었으나 꿈의 끝은 무조건 카나타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죽음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었고, 본래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나타날때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카나타는 분명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의식이 반영됨을 증명하는 것처럼.  슈하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깊어질 때마다 슈하는 카나타의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살아있다는 것은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것을 제대로. 눈앞에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카나타는 그 떠언 순간보다도 불안에 젖어버릴 것 같았다. 가슴팍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슈하가 급하게 카나타의 가슴 위에 제 머리를 조심히 울렸다. 심장 소리,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피가 흐르고 있고 모든 것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슈하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슈하가 조용히 소리를 확인했다.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뺀다면 고요한 방이었으므로 두근거리는 소리가 슈하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작고, 평소보다는 느리지만. 확실히 카나타는 살아있었다. 그것에 묘하게 안도가 돼 슈하는 한숨을 내뱉고선 천천히 카나타의 가슴에서 멀어졌다. 그거면 돼. 그렇게 생각한 슈하가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카나타는 눈을 뜬 상태로 슈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졸음이 가득한 눈도 아니고,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의 눈이었다. 그 눈에 당황한 슈하의 눈이 덩달아 조금 더 휘둥그레졌다. 카나타는 슈하가 놀랐다는 것을 깨닫고선 작게 웃었다.

“뭐 하고 있었어?”
“......확인하고 있었어요.”
“살아있는걸?”

아니라는 말도 하지못하도록 카나타는 즐거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러나 카나타의 그런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슈하는 거짓을 말하지는 못했다. 카나타에게 있어선 어떤 식으로든 긍정을 말하는 것이 슈하의 최선이었으므로. 하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카나타가 보일 반응이 두려웠다. 슈하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카나타는 그조차 예측했다는 듯 자리에 그대로 앉아 슈하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스킨십에 당황한 슈하가 말 한 마디를 더 내뱉을 틈도 주지 않고 카나타는 그대로 슈하를 끌어안은 채 누웠다. 밀착한 채로 누운 것이 적응되지 않았기에 ―애당초 불편하게 누운것도 있었으나, 슈하는 그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또한 카나타가 제게 해주는 것이었으므로.― 슈하가 뻣뻣하게 굳어있자 카나타는 그런 슈하를 위로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괜찮다고 말해주듯이 천천히 슈하의 등을 토닥였다. 토닥임이 많은 것을 나아지게 하지는 않았으나 슈하는 그런 행위 하나에 묘하게 안심이 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으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으므로.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괜찮다고 카나타가 말해주고 있었기에. 자신의 히어로는 단 한 번도 오답을 내놓은 적이 없는, 그 누구도 멋진 사람이었기에. 뻣뻣하게 굳어진 슈하의 몸이 어느 정도 편안해진 것을 깨달은 카나타가 슈하에게서 살짝 떨어져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슈하 또한 그 미소에 어색하게나마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카나타가 웃는다면 자신 또한 웃게 되곤했다. 좋지 못한 버릇이라고 카나타는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슈하는 그 버릇이 생겨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뭐라 말하더라도 눈 앞의 사람이, 자신을 구원해 준 사람이 웃고 있다면 웃지 아니할 수가 없는 탓이었다.

“걱정 마.”
“…….”
“이곳에 있어.”
“……계속, 인가요?”
“영원을 약속하는 건 조금 바보 같으니까, 한달 뒤에는 있는 걸로 할까. 그리고 다른 한 달 뒤에 또 곁에 있는 걸로 약속할게.”

어린아이를 달래주는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였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도, 목소리도. 그 어떤 것보다도 크게 느껴지는 다정함에 슈하는 여태까지 자신이 느꼈던 것들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로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한 달 전이든, 일주일 전이든, 한 달이 지나고 나서든……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으니까. 한 번 사라진 사람이 또 사라질 수도 있기에. 그러니 슈하가 할 일은 카나타가 두 번은 사라지지 않도록, 한 달 뒤의 미래에도 카나타가 제 곁에 있을 수 있도록. 카나타를 최대한 지키는 것이었다. 결코 실수하지 않고, 카나타와 오래 있을 수 있도록. 영웅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슈하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카나타를 오래 바라보다가 결국 베개에 얼굴을 조심히 묻었다. 숨을 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으나 카나타에게 얼굴을 묻는다거나 카나타에게 얼굴이 닿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됐다. 그 미련함이 카나타가 보기엔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우습게 느껴지도 했으나. 그 모든 것조차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임을. 카나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그 어떤 것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소중한 것은 때로 깨지지 않기 위해서 지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므로. 아마도 눈앞의 소년에겐 자신이 그러한 존재임이 분명할 것이었다. 미묘하게 씁쓸함이 느껴졌다. 이해를 하는 것과 납득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재였으므로.

몇 번이고 슈하의 등을 토닥이던 것을 멈춘 카나타가 슈하의 반응을 바라보았다. 슈하는 이제 잠든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안심한 것인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얌전히 있었다. 잘자, 좋은 꿈 꾸길 바라. 그렇게 말하며 카나타는 슈하의 모리를 쓰다듬었다. 과거와 변함없는 머리카락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것이 아주 오래 무한하기를 비는 것이 두 사람의 최선이었다.